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문단 편집) === 배구계의 흑역사를 만들었던 스카우트 문제 === 또한 명백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삼성화재의 창단 과정''''''. 프로 스포츠에서 선의의 경쟁이 필요한, 공정한 수준을 넘어선 지나친 스카웃으로 [[대한민국]] 배구판 자체를 [[흑역사]]로 만든 주범이 바로 삼성화재다. 그 이후에도 그 선례를 이용해 수많은 악용 사례가 나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캐피탈 창단 과정, 절반의 성공만 거둔 한국전력의 준프로 전환이 있다.]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창단된 시기인 [[1995년]] 7월, 삼성화재가 배구 팀을 창단한다는 소문만 무성했던 무렵인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그 소문이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팀 창단 조건으로 삼성화재는 '도대체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것을 요구하였는데''', 기존 스카웃 조건들을 싹 다 무시하고 삼성화재 구단 자신들이 원하는 신인 선수들을 모두 삼성화재 쪽으로 몰아 달라는 것이다. 비록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자동차서비스]]는 투덜투덜거렸지만 자신들도 '''1990년에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으로 가버릴 [[마낙길(배구)|마낙길]]을 영입했고, 이듬해인 1991년에는 [[한양대학교]]의 4인방인 [[하종화]], 윤종일, 장재원, 문양훈을 7억 원이라는 엄청난 돈으로 싹쓸이했다. 그리고 또 이듬해인 1992년에는 [[강성형]], 박종찬, 또 다음 해인 1993년에는 ''''''[[임도헌]]'''''' 등등 스타급 선수들을 모조리 싹쓸이한 전례가 있어서 할 말이 없는''' 데다가, 전 시즌인 1995년에 우승한 디펜딩 챔피언이라서 할 말은 많은데 있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현대자동차는 국가대표 훈련 중에 마르팡 증후군으로 인한 심장질환으로 [[1995년]] 2월에 갑자기 숨진 센터 김병선의 공백을 메우게 하려 했던 센터 [[김상우(배구)|김상우]]를 삼성화재에게 넘겨줬다. 현대에게 있어서 아쉽지만 그래도 언제든 우승권에 가장 근접한 팀 구성으로 미루었을 때 그래도 군말 없이 물러난 것이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도 마찬가지로 투덜거렸지만 애초에 대한항공은 투자에 인색한 구단으로 유명했기에 별다른 말 없이 신생 팀을 위한 일종의 선물이라고 치고는 자신들이 스카웃할 김규선을 삼성화재에게 넘겨줬다. 그런데 문제는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였다. 당시 LG화재가 받을 수 있었던 신인 선수들은 [[김세진]], 구본왕, 구준회였다.[* [[김세진]]은 말이 필요 없는 한국 배구사의 전설이고, 구본왕, 구준회 또한 포텐셜이 어마어마한 유망주들이었다. 부상 때문에 은퇴해서 그렇지.] 전년도 결승에서 현대에게 무참하게 [[셧아웃]]당한 데다가 스카웃 경쟁에서도 그간 현대에게 진 것만 따지면 몇 번이나 우승할 기회를 날려 먹었는데, 이번에는 당대 최강의 대박급 신인들을 눈뜨고 삼성화재에게 빼앗기는 참극을 맞이하게 된 것. 당연히 LG에서는 서슬 퍼런 눈으로 반대할 수밖에. 거짓말 안 치고 '''"차라리 우리가 팀을 해체했으면 해체했지 이런 꼴을 보지는 않겠음!"'''이라고 바락바락 반발을 했다. 결국 삼성화재는 LG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결국 [[김세진]] 하나만을 데려가는 것으로 끝냈는데, LIG 팬들은 이런 삼성화재의 행태를 맹비난한다. 그 와중에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은 자신들이 원하는 [[경기대학교]]의 박선출을 그대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사실 박선출 정도의 선수는 삼성의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갖은 우여곡절 끝에 삼성화재는 1995년 11월에 창단했는데, 그 멤버 구성을 보자면 [[한양대학교]]에서 [[김세진]], 김규선, [[장동우]], 오세종, 김태종을, [[성균관대학교]]에서 [[김상우(배구)|김상우]], 장민호를, [[홍익대학교]]에서 최근배, 장경훈을, [[충남대학교]]에서 김재만을 데려왔다. 그런데 문제는 삼상화재가 리그 출전을 운운했음에도 최소 엔트리인 12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겨우 10명만으로 선수 등록을 끝내 놓고는 추가 선수 영입을 중단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며 쉽게 말해서 배구단 창단하네 마네 갖가지 난동과 패악을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1995-96 슈퍼리그에 참가를 안 했다. 그렇게 1996년 슈퍼리그를 날려버린 삼성화재는 이듬해 3월부터 [[무개념]]이 따로 없는 스카웃의 진수를 보여줬다. 그때 삼성은 93학번 싹쓸이 모드에 돌입하였는데, 경희대에서 허규호를, 경기대학교에서 [[차상현]]과 김구철을, 홍익대에서 하종민, 윤종권을, 명지대에서 이재현을 가져가는 것도 모자라서 [[성균관대학교]] 4인방인 방지섭, 강근수, 김명철, 그리고 [[신진식]]까지 뜯어가버리는 것으로 그 정점을 찍어버렸다. 그것도 모자라서 한양대로부터 신정섭[* 신정섭은 이후 97 슈퍼리그 결승전에서 그야말로 하드캐리를 하고 말았다.]을 손에 넣기까지 했다. 이로써 삼성화재는 당대 빅3 중에서 현대자동차에 입단한 경기대학교의 [[후인정]]을 제외하고 나머지들을 다 가져가버렸다. 이 시기 성균관대 출신 선수들이 많았는데 이는 1996년 성균관대 학교 법인이 삼성 재단에 넘어가 삼성화재로 스카우트 되었었다. 거기까지만 해두고 그치면 또 모를까, 이전에 LG로부터 김세진을 뜯어갔던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다음 해에는 현대로 가기로 되어 있었던, 그리고 현대로 가고 싶어했던 신진식을 현대에게 17억 원이라는 거액의 위약금까지 물어 주면서까지 데려와버렸다. 거기다가 94학번 선수 중에서는 권순찬, 김기중만 데려왔다. 더 웃긴 것은 삼성화재는 [[방신봉]]까지 데려오려고 했던 것. 게다가 [[권순찬]]은 LG에서 '''이번에는 절대로 삼성에게 우리 선수 뺏기지는 않을 거야!'''라는 마인드로 지극정성을 들였음에도 '''뺏겼다'''. LG의 분노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렸고, 결국 이는 LG화재가 1999-00 슈퍼리그를 포기하는 결정까지 내리게 한다. 신진식의 경우를 보자면 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는데, 저 시기엔 학교의 동의와 졸업장 없이는 실업 팀 입단이 무려 5년 동안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성균관대학교는 자신들의 재단인 삼성화재에게 거액의 돈을 지원받고 있는 실정. 사실상 성균관대에서 신진식에게 '''삼성에 입단하지 않겠다면 학점 인정도 안 해 주고 은퇴 ㄱㄱ OK?'''라고 협박한 셈. 그리고 신진식의 삼성화재 입단을 끝까지 강력하게 반대한 당시 성균관대학교 배구부 감독인 [[김남성]]은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의 모기업인 삼성에게 완전히 찍혀서 신진식의 삼성행이 결정된 이듬해에 일반직으로 전환되었고, 친 현대파였던 [[김남성]] 감독은 성균관대와 삼성화재의 그 모진 구박 속에서도 꿋꿋이 버텼지만 결국 해임당했다. 그 여파로 인해 삼성화재는 이후 김남성 감독의 직계 제자들에게도 갖은 박해를 가하였다.[* 김남성 감독 밑에서 배구를 배웠던 직계 제자들이었던 신진식, 김상우, 김기중, 권순찬, 방지섭 등은 아직 더 뛸 수 있는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한양대의 김세진이나 석진욱과 달리 반강제적으로 은퇴를 해야 했다. 단, 장병철은 발목 부상으로 은퇴했으니 제외다.] 여기다 세터 [[신영철(배구)|신영철]]을 코치로 쓰고 싶다고 트레이드해서 한국전력에서 데려갔지만, 막상 데려오니까 플레잉 코치 운운하며 도로 선수로 뛸 수 있게 선수등록을 시키려 했다. 이에 현대자동차나 LG 등 타 팀들은 반발했고 이 논란으로 애틀랜타 올림픽을 마치고 1996년 8월12일자로 삼성화재에 입단한 신영철은 ‘1년 자격정지’의 불이익을 당하게 됐다.[* 하지만 정작 자격정지가 풀린 1998 시즌에서의 신영철은 욕을 먹으면서 까지 데려온 보람만큼의 실적을 내지는 못했다. 신영철의 강점은 낮고 빠른 토스를 앞세운 스피드와 변칙형 배구지만 이는 삼성화재에 맞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하필 상대 팀 현대자동차가 그 해 만큼은 장신 블로커들 천지여서 수도 없이 김세진, 신진식이 낮은 토스 때문에 블로킹의 제물이 되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삼성화재는 우승했다.] 그리고 한국배구연맹에서는 더 이상 협상이 어려우므로 기존대로 자유 계약제로 스카우트를 한다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각 실업 팀들은 단장 회의를 통해 드래프트가 아니면 스카우트를 하지 않겠다고 철석같이 합의를 했었는데, 삼성에서 갑자기 단장이 바뀐 데다가 배구연맹도 드래프트 말고 기존 방식대로 자유 계약으로 선수를 수급하라고 하자 삼성화재는 기다렸다는 듯이 '''"예전 단장이 한 합의 따윈 무효임 ㄲㄲ~"''' 하면서 협회의 자유 계약제 선언 1주일 만에 한양대의 석진욱, 최태웅, 성균관대의 장병철, 노경택과 신선호(자퇴), 경희대의 명중재를 무지막지한 돈을 뿌리며 스카웃했고, 그들을 스카웃했다면서 연맹과 각 팀에게 통보해 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것.[* 이때 신선호의 자퇴는 삼성이 짜고 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나 삼성화재 입단과 동시에 센터로 포지션을 전환했다는 점에서는 소문이 아닐 거라는 확신만 남겼다.] 이것은 삼성화재가 한국배구연맹과 한통속인 것으로 봐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로 흐른 것이다.[* 여기에 배구연맹의 징계는 고작 2년간 드래프트 1, 2순위 지명권을 박탈하는 것이었고 이미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가져간 삼성화재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LG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잘 참았던 다른 구단들도 들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삼성화재의 입단 계약에 대해 전면적이고 즉각적인 무효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은 그 말을 들어줄 턱이 없었다. 삼성은 ''''왜 우리가 가진 합당한 권리를 포기하라는 거임?''''이란 인터뷰를 날리고 법무팀의 자문까지 받아 가며 드래프트로 내놓을 수 없다고, 단박에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결과 ''''리그 정지'''' 사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95학번까지 스카웃을 마치고 나서 배구판은 거의 초토화 될 뻔했다. 배구 팬들은 이 사태를 보고는 '삼성화재든 현대자동차든 LG화재든 다 똑같이 나쁜 노무 시키들이야!'라고 외친다. 그 이유는? '''95학번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2000-01 시즌에 이르러서는 각 팀들의 선수 부족은 극에 달했는데 팀마다 10명 이상 선수를 보유한 팀이 드물 지경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앞서 삼성이 벌려온 행태 때문에 나머지 구단들은 선수들을 스카웃할 마음까지 사라져버렸고, 삼성화재만 좋은 선수들을 죄다 가져갔기에 선수가 남아돌아서 강제 은퇴시키는 짓까지 벌여 놓았다. 이후 삼성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적수도 없었다. '''거기다 삼성화재는 [[1995년]] 12월 창단 이후 2015-16 시즌 3위를 할 때까지 20년간 19차례 결승에 올랐다.[* 왜 19번이냐면 창단한 첫해에는 참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삼성의 안티들은 한결같이 삼성이 동네북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머지 구단들이 잘 했냐면 아니올시다였다. 우선 95학번 싹쓸이 당시 삼성화재를 욕하면서도 삼성화재로 간 선수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을 매몰차게 외면해버렸다. 그나마 졸업 후 상무에 입대한 박종호(홍익대), 자진 유급(졸업 유예)한 정승용(서울시립대)과 박우석(명지대)은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지만 문지환(경기대), 이성균(명지대), 박진성(인하대) 등은 아예 선수 생활을 접어버렸다. 이후 96~98학번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실시하면서 삼성화재는 1라운드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여 견제를 유도했지만 97학번 드래프트에서 여오현이 삼성화재로 가는 것을 방치하면서 삼성화재가 약점으로 지목된 리베로 자리를 한 방에 보강하도록 해 버렸고, 알자배기 선수였던 이인석을 매몰차게 외면하는 등[* 이인석은 체육 특기자 선발이 중단되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서울시청 배구단으로 들었다가 상무에 입대했으나 복무 도중 서울시청이 해체되면서 또 다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고, 전역 후 우여곡절 끝에 한국전력에 입단할 수 있었다.] 삽질을 반복했다. 특히 LG화재는 1999-2000 슈퍼리그에 불참하면서도 김완식, 문병택, 이종만, 김재만을 강제 은퇴시키더니 이들과 동년배인 이수동을 데려 오는 이해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